B급찍사 2023. 10. 4. 13:33

"카메라 어디거에요?"

"리코요"

"아~ 니콘 쓰시는구나~"

"아뇨... 리코요"(시무룩)

 

보통 내 카메라를 처음 본 사람들의 반응이다.

 

GR이 꽤 히트를 쳐서 요즘은 그럭저럭 알려졌다만

그래도 마이너한 브랜드 리코. 

아마 한국에서는 리코라는 이름보다는 신도리코가 더 유명할 것이다. 

맞다, 그 복사기 만드는 회사. 

국내회사 신도와 일본회사 리코의 합자회사이다. 

 

복사기와 카메라. 어떻게 보면 말도 안되는 조합같기도 하나, 

캐논도 사실 OA 전문회사다. 

기본적으로 복사기 같은 것도 다 광학기술이 기반이기에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니다. 

 

안그래도 마이너한 브랜드인데, 내가 쓰는 GXR은 발상부터 완전 다른 카메라라서 더욱 마이너하다. 

 

이 신기한 카메라는 

일반적인 렌즈 교환식 카메라가 바디+센서를 고정으로 하고 렌즈를 갈아끼우는 것과 달리

렌즈와 센서를 합쳐버린 비범한-_- 녀석이다. 

 

저 합쳐진 것의 정식 명칭은 유닛Unit 또는 모듈Module인데 영어권 유저들은 렌즈와 센서를 합쳐 무려 렌서Lensor-_-라고 부르더라.

발매된 GXR의 모듈은 다음과 같다. 

 

A12 28mm(1.5x crop Sensor, 12M pixels)

A12 50mm Macro(1.5x crop Sensor, 12M pixels)

S10 24-72mm(1:1.7" Sensor, 10M pixels)

P10 28-300mm(1:2.3" Sensor, 10M pixels)

A16 24-85mm(1.5x crop Sensor, 16M pixels)

A12 M Mount(1.5x crop Sensor, 12M pixels, 렌즈없이 마운트만 존재, Leica M Mount 렌즈용)

 

현재 나는 M Mount 를 제외한 모든 유닛을 다 가지고 있다-_-;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센서 사이즈가 아주 자유분방하다. 

때문에 초점거리는 전부 풀프레임 환산 화각이다. 

 

먼지가 잘 안들어간다 정도가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싶은데-_-;;

어쨌건 먼지는 정말 안들어간다.

가방에서 몇년을 굴렸는데도 아직 먼지 한 번 찍힌 적이 없으니 정말 안들어가기는 한다.

물론 한번 들어가면 영원히 못뺄 각오를 해야할 수도 있다-_-;;

 

리코社의 의도는 아마도...

화질이 필요할때는 1.5 크롭 센서 유닛을 사용해서 예쁘게 찍고, 

줌이나 가벼운 무게가 필요할 때는 S10이나 P10 같은 가볍고 줌이 가능한 유닛을 사용해서 찍자 뭐 이런 마인드였던 것 같다. 

 

대담한 시도를 한 것은 좋았으나...

이 시도에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으니

바로 가격이다. 

센서는 비싼 부품이다. 단일 부품으로는 카메라에서 가장 비싼 부품일건데, 

한개의 센서로 돌려찍을 수 있는 다른 카메라와, 

렌즈+센서 가격까지 지불해야 하는 이 카메라의 가격 차이는 렌즈(또는 유닛)을 추가할 때마다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그나마 독자규격이니 3rd 파티가 나올리도 없고, 위에 설명한 저 여섯 개가 전부이다.

 

그나마 다행인건 리코가 만든 단렌즈 품질이 꽤나 좋고, 

이미지 하나는 잘 뽑아 준다는 것 정도. 

 

GXR은 JPG 모드가 다양하지 않다.

그나마 있는 것도 촌스럽기 그지 없어서 

 

선명하게

표준 

내추럴

흑백

흑백(TE)

설정 1

설정 2

 

이게 전부다-_-

하지만 선명하게의 위력이 엄청나서

 

20160914 R0017368 RICOH GXR A12 ƒ/5.6 1/2000 18.3mm ISO200

따로 후보정을 하지 않아도 원색 하나는 기똥차게 뽑는다. 

흑백을 제외한 다른 모드는 평소에 건드리지도 않고 오로지 선명하게 하나만 주구장창 사용 중이다. 

위 사진은 A12 환산 28mm 단렌즈로 촬영한 사진. 

 

한국에는 워낙 유저가 적기 때문에 뭣 좀 찾아볼라 치면 영어권 커뮤니티를 기웃거리게 되는데, 

가면 거의 모든 사람이 S10, P10 같은 쓰레기 쓰지말고 오직 A12 유닛만 사용하라고 강조하는 글을 자주 보게 된다.  

 

20160912 R0016987 RICOH GXR P10 ƒ/71/640 4.9mm ISO100

하지만 (당연히) 광량만 충분하다면 가장 작은 센서(스마트폰 카메라 급)를 장착한 P10 역시 실사용 레벨이 된다.

 

R0016622_2 RICOH GXR A12 ƒ/2.5 15초 18.3mm ISO 400

문제는 야간인데...

2009년에 발매된 카메라여서 어쩔 수 없이 고감도 노이즈가 쥐약이다. 

고작 ISO 400 15초에서 이 정도..; 

물론 과보정해서 컬러노이즈가 꽃피는 것도 있지만,

이건 답이 없는 부분이고 포기해야 마음이 편하다. -_-;;

 

20160914 R0017459 RICOH GXR A12 ƒ/2.5 1/50 18.3mm ISO 400

이 카메라가 가장 빛을 발할때는 노을 촬영 때가 아닌가 싶다. 

원색을 강조하는 이미지 프로세싱...

어떻게 보면 좀 투머치하다 싶을 때도 있기는 하지만.. ㅎㅎ

 

별다른 후보정 없이 자체 프로세싱 만으로도 강렬한 느낌을 준다.

20160914 R0017477 RICOH GXR A12 ƒ/5 10초 18.3mm ISO400

어쨌건 이 녀석 덕분에 다른 렌즈교환식 카메라보다는 먼지 걱정을  하면서 2016년 몽골 여행을 잘 다녀왔다. 

몽골 여행 중에는 주로 28mm 유닛을 사용했는데 현재는 50mm 유닛을 주력으로 사용중이다. 

 

20200403 R0024881 RICOH GXR A12 ƒ/2.5 1/32 33mm ISO 640

야간에 약하기는 해도 내가 안흔들리게 잘 찍기만 하면 아직 이런 것도 가능하다. 

 

20170501 R0019844 RICOH GXR A12 ƒ/5.6 1/1320 18.3mm ISO 200
20170330 R0019752 RICOH GXR A12 ƒ/2.5 1/14 18.3mm ISO 200

입자가 굵은 노이즈로 필름 같은 느낌을 주는 High Contrast B&W 모드도 훌륭하고. 

 

이 카메라가 정말 좋은 점이 있다면 말도 안되는 조작성이다. 

기껏해야 크롭바디 사이즈 카메라인데 가끔씩은 메인 카메라인 풀프레임 Pentax K-1 보다도 편하게 느껴질때가 있다.

사용자 커스터마이징이 어느 정도 가능하고, 

왼손을 사용하지 않고도 어지간한 기능은 전부 컨트롤이 가능하다는 것... 

 

10년도 더 된 낡은 카메라지만...

그렇게 무겁지 않은 크롭바디 + 환상적인 조작성 + 적당히 잘나오는 사진의 조합은 

데일리 카메라로 충분히 매력적이다. 

 

아무리 사진이 잘나와도 1Kg이 넘는 무게를 매일 들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심지어 필자는 직업이 서버 엔지니어라서 노트북도 메일 들고다녀야 한다ㅠㅠ

 

그런 이유로 메인 카메라를 밀어내고 데일리로 꾸준히 들고 다니는 녀석이다. 

거기다 적외선 개조된 S10 모듈까지 구입하는 바람에 의존도가 더욱 커져버렸다-_-;;

 

렌즈 셔터라서 포컬플레인 셔터에 비해 수명도 더 길 것으로 예상한다. 

배터리만 중간중간 갈아주면 10년 더 써도 괜찮을 것 같은데...

문제는 이제는 바디가 정말 맛이 가기 일보 전이라서 

모드 다이얼이 반은 인식이 안된다-_-;;

중고 미품이라도 스페어 바디를 하나 구입해야하나 싶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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